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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샹그릴라! 그리스!/신화와 역사

아드리아해 크루즈 단골 기항지 코르푸의 2400년 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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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년 전에 이미 코르퀴라 Corcyra (요즘의 코르푸)는 아드리아해의 강력한 해군 도시국가였다. 번영을 구가하던 이 아름다운 도시국가는 코린트와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잘 사는 나라이기는 해도 코르푸는 당시 최고의 해군을 가진 코린트의 적수가 되기는 힘들었다. 멸망의 위기에 몰린 이들은 코린트와 앙숙관계인 아테네에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

녹음이 우거지고 바다색이 고운 코르푸는 사람이 살기 좋은 기후와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기원전 5세기 경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두차례 전쟁에서 이겨 에게해의 지배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참조:

2018/09/19 - [나의 샹그릴라! 그리스!/신화와 역사] -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아테네 점령

2018/09/18 - [분류 전체보기] - [그리스여행 정보] 고대 페르시아의 2차 침공: 스파르타 테르모필라에 전투


수많은 도시국가 중에서도 코린트가 제일 먼저 두각을 나타내어 아드리아해 까지 식민지를 개발하였고 코르퀴라도 그 중 한 도시였다. 하지만 코르퀴라는 모 도시인 코린트에 적절한 예의를 갖추지 않아 코린트 인들은 이 건방진 도시를 응징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지금도 현지에 가보면 코린트의 지형적 위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도시의 북쪽은 이오니아해로, 남쪽은 에게해로 이어진다. 19세기에 코린트 운하가 완공되기 전에는 이오니아 해에서 온 물건을 상륙시켜 남쪽 에게해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코린트 였다. 디올코스 Diolkos는 아예 배를 육지 위에서 운반하던 길의 이름이다. 

지금도 바퀴에 패인 디올코스의 흔적이 완연하다. 

코린트 인들은 발칸반도에서 나우팍토스를 통해 남하한 도리아 인이었다. 이들은 토착세력 이오니아 인들을 정복해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는데 스파르타, 아르고스, 메세네가 대표적이고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모두 차지한 후에도 확장을 거듭했다. 코린트는 그리스 최강의 해군을 자랑하고 있었고 항해기술과 조선기술도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리스에서 올림피아에 있는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코린트의 아폴로 신전. 기둥의 모양이 도리아 식의 원초적 모습이다. 

한편 아테네는 대대로 이오니아 인들이 살던 곳으로 도리아 인들 조차도 토양이 척박해 점령하지 않고 지나친 땅이었다. 그러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스파르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지금도 건재하다.

특히 현명한 지도자 테미스토클레스 Themistocles가 해군만이 아테네가 발전할 길이라는 주장이후 그리스 최강의 함대를 갖게 되었고 코린트는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한다.

[참조  2018/10/27 - [나의 샹그릴라! 그리스!/신화와 역사] - 흥하는 나라, 망하는 나라 - 아테네의 교훈]

코린트는 아테네를 견제하는 것이 주 관심사였기 때문에 아테네의 맞수인 스파르타가 맹주로 있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입한다. 전쟁도 코린트가 스파르타에게 계속 압력을 가해 발생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바다에서의 교역이 활성화되며 급성장한 코르퀴라는 에피담노스라는 도시의 지배권 다툼에 끼어들어 그렇지 않아도 사이가 좋지 않던 코린트와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다급한 코르퀴라는 아테네에 사절을 보내 도움을 청했고, 코린트 역시 아테네로 사절을 보내 코르퀴라를 돕지 말도록 설득했다. 2400년 전, 아테네의 민회에서 수천명의 시민들에게 코르퀴라와 코린트의 사절들이 한 연설은 지금 읽어도 탄탄한 논리와 협박이 적절히 섞인 탁월한 것이다. 

먼저 코르퀴라는 아테네가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코린트와 휴전하고 펠로폰네소스 동맹에 가입하겠다고 협박과 회유를 했다. 그리스 3대 해군국이라 자부하던 그들이 스파르타와 한 편이 되면 1, 2위를  놓고 아테네와 경합하는 코린트 해군과 합쳐 제해권을 장악할 것이 분명하였다. 

두번째로 등장한 코린트 인들은 그 몇 년 전 사모스에서 반 아테네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의 불간섭 결정으로 아테네-스파르타 간 전쟁을 막아준 사례를 들며 은혜를 갚을 것을 요구했다.   코르퀴라는 자신들이 버릇을 가르칠테니 아테네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테네 시민들은 첫 회의에서 코린트를 지지했다. 그러나 하루 밤을 지내고 다시 모인 회의에서 코르퀴라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코르퀴라와 힘을 합쳐 코린트를 공격하는 동맹이 아닌 수비동맹 만 체결하기로 하고 20척의 소함대를 코르퀴라로 파견했다.

시보타 해협은 코르퀴라 남쪽에 있다. 

피할 수 없는 코린트와 코르퀴라의 해전이 벌어진 곳이다. 전투 초반 코린트가 승기를 잡자 관망만 하던 아테네 해군이 소극적이지만 전투에 개입하게 되었다. 또 전투 후반 느닷없이 등장한 아테네 전함 10여척이 대 함대의 척후인 줄 착각하고 후퇴한 코린트 해군이 승리를 날리게 되면서 아테네에 대한 적대감은 극에 달했다. 

코린트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군대를 공격한 것이 명백하므로 그때까지 유지하던 아테네-스파르타 동맹 간의 30년 휴전이 파기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를 시작으로 30년이나 지속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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