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에서 출발한 여객선은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는 수준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카훼리라고 해봤자 십여대를 싣는 것 같은데 이곳은 백여대를 넘게 싣고 다닌다. 만 톤 정도는 족히 되어 보인다.
크루즈 배와 비교하면 1/10 수준이지만 배 안의 시설은 편리하다. 물론 크루즈처럼 호화시설은 아니지만 층마다 에스컬레이터가 있다거나 제법 안락한 소파들이 많이 갖춰져 있다거나 하는 점은 단거리 여행을 하는 사람에게 상당히 편리하고 편안하다. 이 섬은 에게해의 여러 섬을 다니는 연락선 성격을 갖는데 멀리 가는 승객을 위한 침대 선실도 구비하고 있다.
목적지는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코스 Kos섬이다. 배로 약 4시간 거리라 난 둥그런 소파를 하나 찾아 창밖을 보며 로도스에서의 피로를 풀었다.
코스 섬에 도착해 짐을 끌고 부두를 벗어나려는데 베니스인들이 지었을 법한 방어 성채가 여지없이 항구를 지키고 있다. 그 앞에는 세일 보트들이 정박한 마리나가 성벽을 따라 조성되어 있었다. 첫 인상부터 크레타의 이라크리온이나 로도스 섬의 풍경보다는 차분하고 소박하였다.
마침 항구에서 쾌속선 한 척이 출항을 한다. 그러고 보니 수평선 대신 멀리 육지가 자외선으로 뿌연 하늘 멀리 보인다. 터키 땅이다.
좀 전에 출항한 배도 터키로 가는 모양이다. 이곳이 그리스의 섬 중에서 터키와 가장 가깝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내일 저 배를 타고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보러 갈 것이다.
내가 예약한 호텔은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있었다. 내에게 배정된 방은 소박했지만 큰 창을 통해 항구가 잘 보였다.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을 겸 산책을 나서 항구 방향으로 간다. 약한 내리막을 5분 쯤 걸었을까. 왼편에 석상이 있어서 보니 알렉산더 대왕이다. 그가 이곳과 무슨 인연이 있지. 그를 좋아하는 나도 모르던 사실이 있었던 모양이다. 친절하게 석상의 기초 부분에 그리스 말과 영어로 설명이 있다.
내용을 읽어보니 기원전 324년에 대왕이 한 선서 pledge라고 써있고 "전쟁이 끝났으니 모두 행복하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라. 내겐 이방인도 그리스인도 없다. 못된 놈은 그리스인이라도 야만인과 다를 것이 없으며, 훌륭한 야만인은 그리스인보다 훌륭하다."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코스 섬은 의술의 반신인 아스클레피우스의 땅이라고 알려져 왔다. 그 때문인지 의술의 아버지 히포클라테스가 이곳 태생이고 히포클라테스 사후에는 아스클레피우스 와 히포클라테스를 기리는 병원이 세워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길의 끝은 바다로 이어지고 길은 만을 따라 계속되었다. 난 한동안 바닷가를 거닐다가 항구가 잘보이는 곳을 골라 생선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숯불에 구워내는 생선구이의 맛이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간을 많이 하지 않고 숯불에 구워내는 요리가 많은 그리스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딱 맞는다.
아침을 먹고 코스 섬을 둘러보려고 버스를 타고 출발해 섬의 다른 끝 마을 케팔로스로 간다. 가는 길은 상당히 험한 산길이다. 절벽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리고 그 절벽아래로 푸른 에게해가 펼쳐진다. 절경이 하도 많아 감탄하기에도 지친다.
작은 마을에 도착해 주변을 살피니 지형이 참으로 놀랍다. 암벽처럼 생긴 곳은 온통 구멍투성이이다.
자세히 보면 그 구멍들을 더 크게 파내어 사람들이 사는 동굴집을 만들고 있었다. 흡사 카파도키아에 온 것 같다.
별 기대없이 찾아온 섬. 별 기대없이 찾아온 마을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면목을 본다. 관광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이 척박한 모습이 진짜란 생각이 들고 더욱 그리스에 끌린다.
작은 언덕 위에 날개를 잃어버린 풍차가 서 있다. 황량한 모습이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풍차 반대편 둔덕에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멀리 멀리 가물가물 보이는 최신식 풍차들이 뽐내는 모습이 하나도 멋지지 않은 곳이었다.
마을은 많은 에게해 섬에 있는 마을들 처럼 벽은 흰색, 현관문과 벽의 일부는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촌스럽다고 할 수도 있는 이런 배색이 그리스에선 하늘 색, 바다 색과 어우러려 너무 근사하다. 강렬한 태양이 있어야만 살아날 수 있는 색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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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보던 중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동굴을 발견하다. 설마 아니겠지 애써 부정한다.
배회하다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거친 풍경과 푸른 바다를 보며 한적하게 손잡고 걷는 부부의 모습은 더 이상 늠름하지 않은 남편과 더 이상 날씬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아내의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웠다.
점심을 먹기 위해 길 가 절벽 근처의 식당에 갔다. 이곳도 파랑과 흰색이 잘 어울렸다. 하늘 빛과 많이 닮아서...
식당에서 내려다 보는 에게해는 너무 강한 자외선 때문에 뿌옇게 보인다.
서양인 중년 부부가 식당 옆 주차장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평화로웠다. 이곳에 온 관광객들은 그저 한가하게 산책하고 한군데 오래 서서 풍경을 감상하고는 했다. 나도 그들을 배워 느릿느릿 오후를 보냈다.
점심을 먹는 동안 봐 둔 마을 한 켠의 공동묘지에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명당이었는데 이곳의 흰 십자가와 꽃들이 엄숙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바다와 나무, 십자가와 먼 산까지. 하늘과 바다는 더 이상 구분이 불가능하다. 마치 영원으로 이어진 것 같은...
묘지에서 나와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가다 놀이터를 만났다. 목마에서 한동안 즐겁게 놀던 공주가 원판구르기 쪽으로 심사숙고(?)하며 가고 있다.
나무 그늘이 좋아 그 옆 낮고 푸른 담장에 배낭과 카메라를 내려 놓고 우물물에서 세수를 한다. 올리브 나무 그늘에서 버스 시간까지 쉬었다. 먼 바다를 보며.
코스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위해 어제 같던 길로 갔다. 코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는 세일보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마리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가로등이 하나 둘 켜져 한껏 분위기가 좋아졌다.
부두 건너편에 마을이다. 가장 높은 건물이 내가 묵었던 호텔이다.
코스 섬에 밤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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