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자유여행을 다니다 보면 같은 이름의 마을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아기이 아포스톨리 Agii Apostoli가 한 예로, 그리스 내에 여기저기 같은 이름의 마을이 있다. 이번 여행에 포함된 곳은 마라톤 평원에서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이다.
이 길을 가면서 비로소 그리스에 왜 도시국가가 번창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거리는 얼마되지 않지만 시속 30킬로 미터 정도밖에는 낼 수 없는 살벌한 산길이 계속된다.
사진처럼 한 구비를 돌아서면 보이는 바다 풍경이 아름다워 지겨운 줄 모르고 달려가지만 좁고 가파른 길에서의 운전이 쉽지는 않았다.
목적지에 도착해 호텔에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왔을 떄는 벌써 해가 서산에 걸려있었다.
바다를 따라 만들어진 길에는 식당과 숙박시설이 소박하게 늘어서 있었다. 정원에 식탁을 차려놓은 가정집 같은 모텔에 차를 주차하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식당 간판이 석양을 받아 붉은 노란색이 되었다. 간판 아래 놓인 작은 보트하며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은 공중전화 박스가 귀엽다.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몇가지 음식을 주문하고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바닷가를 산책하던 사람들도 뜸해진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두워지는데 입구에 가로등이 들어와 아늑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바닷가에 벤치가 하나 있어 바다 건너 보이오티아를 보고 있다. 그리스의 전함들이 트로이 정벌을 위해 모였던 아울리스 Aulis가 이곳에서 불과 40킬로미터 북서쪽에 있다. 2500년도 더 된 먼 옛날에 이 바다는 엄청난 해군으로 북적거렸을 것이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 아가멤논도, 아킬레스도, 오딧세우스도 모두 저 노을을 보았을 것을 상상해 보았다.
밤에 본 아울리스 앞 바다. 전함들이 불을 밝히고 있던 야경도 이와 비슷했으리라.
아르테미스의 저주로 발이 묶인 함대를 보고 책임을 통감한 아가멤논은 여신의 주문대로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심하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 어촌의 부두로 나섰다. 벌써 출항 준비를 하는 사람이 아침을 시작하고 있었다.
바람도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새벽, 가로등이 잔잔한 바다와 어선을 비추고 있었다.
퇴색한 벤치와 공중전화 박스 그리고 작은 고깃배. 소소한 일상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모습은 정겹다.
이 마을은 아테네에서 한시간 남짓 정도 떨어져 있지만 도시의 냄새라고는 하나도 나지 않고 아주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대도시에서 멀리 가지 않고도 그리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바다를 바라보는 식당의 새벽. 가지런히 정리된 테이블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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