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이 마라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그곳은 자연의 모든 것이 살아 숨 쉬는 무대였다. 오후의 늦은 햇살이 초원의 이곳저곳을 비추며 바람에 스치는 풀잎들 위로 따스한 황금빛을 뿌리고 있었다. 사파리 차량은 광활한 초원을 천천히 가로지르며 우리를 태운 채 꿈처럼 느릿하게 움직였다. 저녁무렵 롯지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반겨준 건 마사이 마라의 석양이었다. 우리는 나무가지가 석양을 받아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는롯지의 넓은 잔디 정원을 걷다가 묘한 것을 발견했다.
하늘은 불타는 듯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고, 그 아래로 드넓은 대지는 무겁고도 조용한 고요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는데 나무 가지가 갈라지는 곳에 ...
어떤 초식동물의 해골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바라보다 유골의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동물의 눈을 통해 아프리카의 석양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산 너머로 서서히 가라앉으며 밤을 준비하는 초원을 동물의 눈을 통해 내다보던 그 순간, 나는 마치 그 동물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고 자연의 웅장함과 시간의 흐름이 하나가 되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둘째 날 아침, 우리는 서늘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사파리 투어를 다시 떠났다. 무수한 초식 동물들과 사자, 코끼리, 하마 등을 보며 오전을 마치고 롯지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야외 식당 앞으로 펼쳐진 잔디밭이 청명한 하늘과 어우러졌다.
오후 사파리를 갔을 때, 차가 다니는 길 한 복판에 새끼 사자 한마리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차를 세우고 녀석을 보고 있는데 녀석이 두리번 거린다. 이윽고 풀섶에서 또 다른 새끼 사자가 나타났다.
2018.08.23 - [유럽자유여행] - 크로아티아 여행: 달마시아 해안과 스플리트 거리 풍경
두마리의 새끼들은 찻길인지 뭔지 모른채 반가움에 장난을 시작하였다.
서로를 툭툭 밀치며 겁 없이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세상의 걱정이라곤 없는 듯했다. 어느덧 그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이리저리 구르며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 작은 생명들이 보내는 기운에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 한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 평화로웠다. 어미 사자는 풀섶에 숨어서 이 꼬마들의 철없는 장난에 애가 타는듯 낮게 으르렁 거렸지만 중2병에 걸린 새끼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놀다 지쳤는지 아예 길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한 놈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나머지 녀석은 무서운 표정 연습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는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선선해진 본관 발코니에서 마쳤다.
마지막 날 아침, 아쉽게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의 이별을 장대한 일출로 맞이해주었다.
동쪽 하늘 끝에서부터 붉게 솟아오르는 태양은 마치 세상을 깨우듯 힘차게 떠오르며 하늘과 대지를 붉게 물들였다.
해의 높이가 달라질 때 마다 계속 셔터를 눌러대는데 멀리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이곳으로 오는 항공기가 머리 위를 지난다.
멀어져 가는 비행기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2악장이 흐르는 것 같은 아침 풍경이었다.
공항으로 출발했다. 포장되지 않은 거친 활주로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붉은 흙먼지를 일으켰고, 초원의 그 끝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게 보였다. 공항은 초원 그 자체였고 한적하게 자리한 작은 판잣집이 면세점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박함이 마사이 마라에서의 경험과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우리를 태울 비행기가 포장안된 활주로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착륙했다.
나이로비에서 출발한 여행객들이 내린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나는 벌써 마사이 마라를 그리워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해골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석양, 새끼 사자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의 일출까지. 마사이 마라의 광활함은 그 끝없는 대지처럼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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