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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Digest

[book digest] 마녀사냥 중세의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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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양태자 (비교종교학 박사)

◆ Prologue

마녀로 몰린 여자들은 기독교의 이분법에 따른 선과 악의 갈래에서 악의 무리에 강제로 분류되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 제 1 부   마녀사냥이 일어난 시대적 배경

마녀의 개념

구약성서에서 사탄은 유일신 하나님의 반대자

신약성서에서 사탄과 마귀를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중세에는 마귀와 악령(daemon)을 같은 개념으로 봄

신약은 사탄을 신의 창조물로 보았다. 즉 천사가 타락한 존재로 신과 정반대 편에 있다. 

종합하면 사탄은 나쁜 힘이자 마귀나 데몬의 제왕으로 볼 수 있다.

마귀나 데몬이 인간이나 동물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보기 시작하며 마녀사냥이 시작되었다. 

백마녀 와 흑마녀

흑마녀 : 해를 끼치고 나쁜 일을 저지르는 마녀

백마녀 : 사람들을 돕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을 하는 마녀. 16세기까지 유럽에 존재하다 기독교화 되면서 마녀로 몰려 절멸된 것으로 짐작

중세 유럽에는 토착종교가 자리잡고 있었고 기독교가 유입되면서 마찰을 일으켰다. 하지만 극빈상태의 서민은 아프거나 다급한 일이 생기면 용한 점장이나 약초를 찾아다니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민중이 전통종교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하면 할수록 이를 사악한 행위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을 통해 신의 심판을 하려는 기독교 세력도 기승을 부렸다. 

기독교와 전통종교의 혼합주의

668년 기독교는 전통종교의 미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6가지 지침으로 경고한다.

예수 이외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 벌을 내린다. 

어미가 딸을 데리고 지붕으로 올라가거나...

누가 죽은 곳에서 살아있는 자의 건강을 기원한다며...

점을 친다거나 마술을 ...

꿈을 풀이하고 마술을 가르치는 ...

누가 제물로 바친 것을 먹었다면 ...

1215년 경부터 고해성사를 전면에 내세워 영혼을 지배한다. 

부부의 성관계까지 기독교 교리에 따르게 통제하고 어기면 고해성사에서 고백하도록 종용

전통종교를 뿌리 뽑지 못하자 기독교는 전통종교 안에서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을 찾기 시작했고 이를 '기독교의 혼합주의'라고 한다. 

전통종교의 다신에 대응해 기독교 내에 다수의 성인, 성녀을 설정

1500년 이후 국지적 마녀사냥 시작, 1580년 경부터 종교 개혁과 맞물려 극에 달함. 

1700년부터 계몽주의가 도래해 마녀사냥이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고문도 감쇠

1800년부터는 확연히 줄어

1954년 마지막 마녀재판은 영국에서

마르틴 루터 조차 마녀사냥에 대해서는 구교와 같은 생각

인큐버스 Incubus : 남자 형상의 마귀가 여자에게 다가가는 것

서큐버스 Sucubus : 여자 형상의 마귀가 남자에게 다가가는 것

구교 신교 가릴 것 없이 선 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되어 마녀사냥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자는 남자처럼 하나님의 모상이 아니다."라고 주장.

남성 위주 중세사회에서 여자에게 조그마한 흠만 있어도 마녀와 동일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의식이 팽배했고 여자들은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다는 논리가 더해져 여자를 마녀로 몰아

수많은 신학자들이 마녀의 존재를 증거하는 책까지 발간

물 시험

철학자, 의사 빌헬름 아돌프 스크리보니우스 개발 1550-1600

가장 정확한 신의 심판이라 주장

법정과 민중에게 큰 호응을 받음 

저서 "차가운 물을 통한 마녀시험과 심문에 관하여"

첫 시험: 손발을 묶어 깊은 물에 던진 뒤 가라앉으면 좌가 없으니 건져서 살려준다. 물에 뜨면 마녀. 마귀가 도와서 뜰 수 있었다고 

두번째 시험: 더 오래된 방법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손으로 끓는 물속에 들어 있는 작대기나 돌을 꺼내도록 한다. 그 후 손에 붕대를 감았두었다 며칠 후 풀었을 때 상처가 곪지 않았으면 마녀가 아니다. 신이 도와 곪지 않았다.


◆ 제 2 부    마녀재판과 고문의 기록

희생자

덴마크 1536-1693 마녀사냥 활발. 1000-2000명 희생

노르웨이 1560-1680 2000명 가량 희생

스웨덴 데이터 부재 마녀사냥에 반대한 슈페 신부의 영향으로 크리스티나 여왕이 마녀사냥 금지

폴란드 1511년 포즈나뉴에서 첫 마녀사냥이후 17세기 절정 수천명 희생 추정. 1766 마지막 마녀사냥. 독일접경지역 심각

마녀사냥의 시작: 프랑스 남부, 이태리 북부. 1500년경 절정. 1520년 부터 감소하다 16세기 말 거의 소멸

이태리 남부 마녀사냥 흔적이 거의 없음

서유럽 16세기 말 절정. 

벨기에 1509-1646 동안 200명 이상 희생

룩셈부르크 약350명 희생

프랑스 마녀사냥의 중심으로 남서쪽 상황 심각. 1557년 툴루즈에서 40명, 1570년 사부아에서 80여명 처형, 알사스 1575년 부터 천명, 로렌 1580-95년 사이 900명 처형, 부르고뉴 1600년경 600명 희생, 바스크 1609년 약 600명 처헝, 1600년 아르데넌 300명 희생

스위스 프랑스와 더불어 마녀사냥 기승. 5417명 희생되었는데 그중 3371명이 바아트 Waadt에서 희생. 

스페인 1481-1808까지 산채로 화형 34,656명, 참수후 화형 18112명, 감옥행 289106명 희생

독일 2만2500명 희생

유럽에서 약 10만 명이상 희생 (독일어권에서 6만명 추산)


◆ 제 3 부    마녀사냥의 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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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부     성녀인가 마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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