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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샹그릴라! 그리스!/그리스여행기

[두번째 그리스 여행]51 크레타, 레팀노 Rethymno의 여름 밤 그리고 여행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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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밤.

애타게 기다려 왔던 기대감은 이제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으로 바뀌고 몸은 달콤한 피곤함으로 차 있다.

짧지 않은 여행.

그리스 본토에서 시작해 크레타 섬까지 20여 일이 넘게 돌아다녔던 행복했던 여행. 수많은 기억은 시간이 흐르며 차츰 희미해져 가겠지만 남은 기억의 조각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삶을 견뎌나가게 해주는 백신이 되어 줄 것이다.

호텔에서 늦은 낮잠을 자고 깨어 저무는 해를 바라보며 다시 레팀노 구경을 나선다. 더위가 한 풀 꺽인 덕에 낮동안 꼭꼭 숨어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서고 있었다. 조명이 하나 둘 들어오는 레팀노 Rethymno의 구도심은 낮 보다 더욱 더 아름답다.

이곳의 건물은 모두 수백년 씩 된 것이라 은은한 조명이 비치면 운치가 남다르다. 카페의 천정은 둥근 아치형태를 띄고 있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주로 창고로 쓰던 지하 구조물이라 터널의 형태를 갖는 것인데 조악한 돌과 흰색 페인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번화가의 구경은 카메라를 부르지 않았다. 역시 낮에 보았던 부두로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바다 내음이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작은 구도심은 어디로 걸어도 한 방향으로만 걸으면 십 분이 되지 않아 끝에 다다른다. 레팀노 역시 금방 바다를 만날 수 있었고 해안도로를 따라 성채 쪽으로 걸어갔다.  

ㄷ자 모양의 부두를 뻉 돌아가며 문을 연 카페와 레스토랑의 불빛이 잔잔한 항구의 바다에 비쳐 환상적인 풍경이다. 어디서 나타난건지 가게마다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는 가게마다 한 두명 씩 밖에 없었는데... 

세일보트 중에는 '딩기'라고 부르는 크기가 있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라 금메달도 나오는데 배를 타는 사람들은 '딩기'를 욕조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요즘 딩기는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드는데 욕조와 크기나 만드는 방법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의 조업을 마치고 정박하고 있는 욕조 크기의 작은 모터보트가 귀엽다. 선장은 뒷편 카페에서 친구들과 잡담 속에 하루를 마감하고...

카페들이 늘어선 반대편에는 바다를 가리고 있는 오래된 성채의 벽이 우람하고 그 끝에는 낮에도 보았던 등대가 불을 밝히고 있다. 베니스의 상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지켰을 성벽 군데군데에는 아치형의 구멍이 있고 조명이 들어와 있다. 아마도 경비 초소로 사용되었던 곳 같은데 노란 불빛이 바다에 비쳐 포근하다. 

성벽 쪽으로 가다 전통적인 모습의 어선을 발견했는데 온갖 물건이 덕지덕지 뭍어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지저분하다거나 더럽게 보이지 않는다. '삶이란 그런 것일텐데'란 생각이 들며 오히려 친근하고 안쓰럽기까지 하다.

정신줄을 놓고 있던 사이에 한켠에서 달이 뜨고 있었다. 보름달도 아닌데 상당한 크기였다. 달 아래 사람들의 흔적이 반짝인다. 

저녁 산책을 나온 모자. 어린 아이는 천진스럽고 젊은 엄마는 아름답다. 오늘따라 늦어지는 어부 남편을 기다리는 모습이 사랑하는 가족의 전형이다. 나도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진다. 이젠 돌아가기 적당한 시간이다. 

작은 항구를 떠나 성채를 바라보며 걸어갔다. 멀리 성벽이 조명을 받아 환하고 내 눈 앞에는 바닷가 테이블에서 정담을 나누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다. 

길은 성벽을 따라 오른편으로 구부러진다. 그리고 다시 왼편으로... 어둠이 짙은 해안도로에는 드문드문 가로등이 어둠을 가르고 있다. 얼마나 왔을까? 뒤를 돌아보니 달이 제법 높이 솟았다. 

여행의 마지막 풍경으로 조금의 부족함도 없는 저녁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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