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토르의 복잡한 피요르트를 캄캄해진 뒤에야 빠져 나온 배는 아테네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하고 우리는 대극장에서 진행하는 쇼를 보고 산책을 마친 후 잠자리에 들었다.
크루즈 쉽은 파도가 심하다 해도 상당히 안정적인데 아드리아 해는 지중해 보다 더 잔잔해서 가는 건지 아닌지를 모를 정도로 차분하다. 게다가 배가 하도 커서 엔진소리 등도 전혀 들리지 않는다. 요람에서 잠자듯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베란다 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지고, 닫고 들어오면 편한 침실이다.
그렇게 저녁을 지내면 내일은 또 다른 놀이터에 내려준다. 여행치고 이보다 편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짐을 들고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는 일도 없으니. 몇년전 에게해 크루즈를 한 뒤, 난 크루즈 매니아가 되었다.
멀리 sail boat 한 척이 달리는 모습을 선실 발코니에서 바라본다.
오늘은 기항지에 들르지 않는 소위 sea day!
배는 하루 종일 파티 분위기로 들뜨게 된다. 모두 꼭대기 층의 야외 수영장과 sun deck에 모여 썬탠과 수영을 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반 쯤 취한 상태로 보낸다.
점심을 마친 시간에 라틴 음악이 나오니 웬 여인이 흥에 겨워 춤사위를 선보인다. 그저 즐거워 하는 것이 보기 좋고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용기 없음이 안타깝다. 춤도 좀 배워볼까?
나와 M은 역시 한국인이라 해가 두렵다. 같이 sun deck에 있어도 유럽인들은 해가 작열하는 곳에, 우리는 그래도 그늘이있는 곳에 자리한다. 앉아서 보니 사진이 되어 한 컷. 이런 분위기로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다.
lady M이 쇼핑을 간 사이 난 제일 높은 층 햇볕 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무리. 동영상을 찍고 십여분을 견디다 내려 오다. 해가 살을 익힌다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
우린 모히토를 마시러 실내의 바를 찾았다. 모두 태양을 즐기느라 실내의 바는 한가하다.
sea day special로 오늘은 저 잔을 선물로 준다나... 그런줄 알았으면 나도 모히토 시킬걸. 미리 말을 하지... Leffe 브라운이 쓰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크루즈에는 쇼핑 센터도 있다. 간단한 크루즈 기념품부터 수만불 짜리 보석까지 파는 명품가게까지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다.
몇년전 크루즈 마지막 날에는 Remy Martin 코냑 XO를 하나 사면 하나를 공짜로 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150불에 두병의 XO란 말을 믿을 수 없어 우리는 두병을 사다 집에서 잘 마신 적도 있다. 이 배에도 50% 세일을 하는데 애석하게도 흥미를 끄는 물건을 없었다.
쇼핑을 마친 후, 메인 로비의 바에서 다시 한 잔. 저녁에 있을 공연 준비로 직원들이 분주하다.
로비에는 밖으로 나가는 문들이 있다. 주로 사람들이 조깅을 하는데 활용하는 긴 데크가 있는 곳에서 M의 사진을 찍었다. 배 안에서는 바다 표면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다.
sea day의 정찬 디너는 각별히 신경을 쓴다. 우리 일행 네명은 Moet et Chandon을 시켜 우리의 휴가를 자축했다. 식사 후반에 한병을 더 시키고 잔과 술병을 들고 배의 제일 뒤쪽 sun deck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서서히 지기 시작하는 태양과 배의 항적이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마침 사람도 우리 밖에 없어서 우린 샴페인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크루즈에선 술잔을 들고 어디를 가도 상관이 없다.) 해가 뉘엿하자 여성들이 추워한다. 우리 남자들은 오랫만에 숫컷 흉내를내며 자켓을 양보했다.
실내에서 서커스 퀴담과 유사한 공연을 하느라 시끄러워 우리도 실내로 들어와 보니 관망용 엘리베이터 옆에서 공연이 한창이다. 앞에 보이는 철구조물에 연결된 선의 끝에 인간이 매달려 있다.
서커스가 끝나고 다시 수영장이 있는 옥상 데크로 나갔다. 자쿠지에서 피로를 푸는 사람들과 생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다. 파라다이스 같은 맑은 공기와 음악 그리고 향기로운 술과 그보다 더 향기로운 사람이 있는 밤이었다.
일정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웬 몽키가 그네를 탄다. 방을 정리하는 메이드가 때때로 수건으로 재미있는 모양을 만들어 놓곤 하는데 이 배에선 처음이다. 안경과 선글라스는 그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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